숫자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객관적인 지표다. 숫자를 조작하는 인간들이 있을 지언정 수 자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기록의 시작과 끝은 수의 환산에서 비롯된다. 사람이 걸어온 길도 마찬가지다. 가치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숫자로 풀어내면 더욱 쉽게 와 닿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김종국은 분명 가진 게 많다. 서른 다섯 살의 김종국은 15년 간 연예인으로 살아오면서 정규 앨범만 열 장을 발표했다. 최근 또 한 장의 새로운 음반을 1년 3개월 만에 들고 나왔다. 특별한 수식어 없이 ‘열한번째 이야기’라는 앨범명에서 고민의 흔적이 묻어난다. 손가락을 헤아리며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고 가야할 길을 새로 닦았다.
#열한번째
10이라는 수의 상징은 꽉 차있음을 나타낸다. 그 다음부턴 새로운 1에서 9가 진행된다. 김종국의 이번 앨범도 새로운 1의 시작을 의미한다. 솔로 6집이지만 1995년 터보 1집부터 열 한 번째 음반이며 데뷔 이래 처음으로 프로듀싱에 참여했다. 구성, 콘셉트, 마스터링, 재킷까지 모든 분야에 손을 댔다.
“작업 과정에서 터보 데뷔 앨범부터 솔로 앨범까지 모두 들어봤다. 나를 있게해 준 과거를 돌아보고 그 향수를 잘 살리고 싶었다. 이제 내 얘기를 담아야할 시기이기도 했다. 프로듀서로 참여하면서 앨범 전체적인 콘셉트에 그러한 부분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음악적인 부분에선 새로운 시도 보다 가꾸는 일에 초점을 맞췄다. 활동곡 위주의 싱글이 대세인 가요계에 정규 앨범을 들고 나온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음반 한 장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던 90년대에 대한 일종의 그리움이다.
“이제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소비하고 사용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미니홈피, 휴대폰 등에 쓰여질 액세서리 같아졌다. 그러다 보니 효율적인 면에서 싱글을 많이 택하게 되고 이러한 순환이 다소 아쉽다. 나 역시 싱글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지만 소장하는 팬들을 위해서 정규 앨범을 꾸준히 낼 생각이다.”
예전에도 곡 선정과 가사는 참여했지만 이번엔 프로듀싱을 전문적으로 배운다는 의미로 뛰어들었다. 앞으로 무대 위 가수 뿐만 아니라 프로듀서 김종국으로도 꾸준히 활동할 계획이다. 이미 솔로를 포함한 두 팀의 신인 후배를 돌봐주고 있다.
“후배 양성을 본격적으로 하게 될 때 많은 도움되지 않겠나 싶어서 적극적으로 배웠다. 그러나 제작자라는 느낌 보다 나를 통해 기회를 많이 얻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열다섯해
“어렵고 힘들었다.”
가수로 살아온 지난 15년에 대한 김종국의 회한이다. 90년대 데뷔한 이들 중 아직도 해마다 새 음반을 발표하는 가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중에서도 김종국은 여전히 연예계 주류로 남아있다. 음반 호황시대를 거쳐 불법 다운로드, 음원 시대를 모두 견뎌낸 것도 어려웠지만 함께 한 동료가 점점 없어지는 게 가장 힘들었다.
“2008년 연말 시상식 때 ‘여기서 계속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처음 들었다. 대기실을 둘러보니 같이 활동해오던 가수들이 한 명도 없더라. 점점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요계 연차별 구성비는 역피라미드의 구조에서 피라미드로 바뀐 지 오래다. 그만큼 신인들이 많아졌고 빠르게 주류로 편승한 다음 금방 사라진다.
“선배들이 왕성한 활동을 안 해서 힘들다. 있어야 기댈 곳도 있고 가는 길을 보면서 성공 사례를 배우기도 할텐데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고 불안한 게 사실이다.”
이러한 불안감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더욱 없다. 그것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타파하고 지금의 김종국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오랫동안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후배들에게 명확한 청사진을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 가수와 예능 활동을 적절히 분배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그림이다.
“예능이나 음반이나 대중과의 친밀함이 가장 중요하다. 올해엔 공연을 통해 팬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관객과 같이 할 수 있는 콘셉트의 브랜드 공연을 만들고 싶다. ‘패밀리가 떴다’에 전념하면서 잃을 수 있었던 가수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전념할 예정이다. 예능은 아직 계획된 것 없고 친한 사람들과 재밌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좋다.”
#서른다섯살
일을 제외한 김종국의 최대 고민은 결혼이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업으로 삼다보니 크게 체감하지 못한 명제였지만 주위에서 만들어준 고민이기도 하다. 집에선 물론이고 어딜가나 물어보니 저절로 가장 큰 고민이 됐다.
“나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안다. 마흔까지 혼자 살고 싶은 생각은 없고 2~3년 안에 할 것 같다. 촉박해졌다. 그런데 짝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웃음)
30대 이상의 노총각, 노처녀가 결혼을 하고 싶은데도 못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눈이 높거나, 본인에게 하자가 있거나.’ 평균 이상의 경제력과 남자다운 외모를 지닌 김종국에게 외형상 문제는 없어보인다. 그렇다면 눈이 높은 걸까? 이상적인 여성상을 물었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만 하면 된다. 착하고 믿을 수 있는 여자면 더 좋겠다. 통통하고 인간적인 몸매에 호감이 간다. 빼어난 외모는 원하지 않는다. 좋은 인상에 성격과 행동까지 매력적이면 확 좋아질 거 같다.”
문제는 결국 미스테리로 남는다. 그러나 외로움을 아직 절감하지 못했다는 모습에서 힌트가 나온다. 무대와 방송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고 바쁘게 지내와서 결혼의 절실함이 파고들 자리가 없었다. 앞으로의 바람을 들어보니 평생 노총각도 남의 일이 아니다.
“이문세와 이승철처럼 공연장에서 관객과 함께 평생 음악을 통해 만나는 게 목표다. 또 김흥국처럼 대중들과의 친밀함을 계속 유지해 나가고 싶다. 인간 김종국과 가수 김종국 사이에서 신비감과 힘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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